이슈와 쟁점
역설의 논리로 본 남북경제협력으로 가는 길
김두환(LH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북핵문제가 해결되면 남북관계는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아갈까? 대북제재가 해제되면 북한의 경제개방과 발전은 곧바로 가능해지는 것인가? 남북 정상은 「평양공동선언」('18.9.19)에서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제반 군사·경제·사회·문화적 조치를 합의하였다. 북핵문제를 포함한 정치·군사적 적대관계를 국제협력을 통해 해소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선결 또는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북핵문제 이전에도 남북이 협력관계는 아니었다는 점에서, 북핵문제가 해결된다고 평화와 번영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남북이 상호이익을 위한 경제협력을 증진하고, 사회·문화 교류와 협력, 나아가 남북경제공동체로까지 발전하는 과정이 진행되어야 비로소 한반도가 평화와 번영의 길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남북경제협력의 성공적 추진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충분조건이 된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 그리고 그것을 위한 남북경제협력으로 가는 길에서 변화와 실행을 위한 관점을 역설의 논리로 되돌아보고자 한다. 먼저, ‘갈등을 통한 협력’. 현실에서 갈등과 협력은 어느 하나를 배제하고 다른 하나를 선택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갈등에서 협력의 계기가 나오고 협력에서 갈등이 발생하면서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해간다. 남과 북의 경제·사회·문화적 협력과정도 그러하다.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그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갈등이 발생할 것이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이를 단순히 회피하는 것은 교류와 협력을 제한하는 것이기도 하다.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고 허용하고 다양화하며, 가능한 범위에서 제도화하고 관계를 더 두텁게 만들어야 한다. 체육, 문화, 사회적 교류, 경제협력과정에서 남은 북에, 북은 남에 더 많은 정보와 사람, 기술과 자원, 재화와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과 교류를 허용하고 증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분리를 지원하는 결합’. 남북경제협력의 과정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문제는 복잡하게 중첩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정치, 경제와 사회·문화 영역’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분리하면서 결합해야 한다. 사회·문화적 영역은 호혜와 연대, 민족의 논리로, 경제적 영역은 상호이익과 타산의 논리로 작동하게 해야 한다. 남북의 일반교역과 공동특구 사업, 도시와 지역개발은 투입과 산출, 주민의 복지와 번영의 논리에서 계획하고 추진해야 한다. 정치적 영역은 큰 틀의 합의와 협조적 관계를 만들고 지원하되 각 영역이 해당 영역의 논리를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초기에 불가피한 정치영역의 주도성은 점차 남북협력과정에서 경제와 사회·문화 영역의 자율성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전체를 품은 부분’. 구상은 원대하고 종합적으로 하되, 실행은 단계적으로 성공 가능한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부분은 전체 안에서 의미를 찾고, 전체는 부분을 통해 실현된다. ‘전체’적 관점에서 한반도와 동북아를 포함하는 거시구상,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실현할 국토전망을 가지고, ‘부분’적 관점에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거점으로 경제특구를 추진한다. 경제특구는 입지, 산업기능, 인프라 및 제도 계획을 중심으로 하되, 장기비전 하에서 추진한다. 특구에서 도시로 지역으로 국토로 국제적 연계로 나아가는 전망이 남북공동특구의 작은 시작 속에 포함되도록 추진하고 평가해야 한다.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이후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고착된 적대와 분열의 한반도를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한반도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 결코 쉬운 일도 저절로 되는 일도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불가피하고,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유지가 아닌 변화의 관점, 수동적 대응을 넘어서는 적극적 행동의 관점이 필요한 시기이다. 구조적 변화를 지향하는 입장에서는 현상을 사후적으로 분석하는 형식논리보다 변화의 역동성을 포착하고 현실의 모순을 담아내는 역설의 논리가 더 실천적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