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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한국형 뉴딜의 성공조건

소진광(본 학회 고문, 가천대학교 명예교수)

    한국 정부는 2020년 7월 14일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하였다. 미국의 뉴딜(New Deal)은 1929년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이어진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한 공공부문의 새로운 역할을 담고 있었다. 미국의 뉴딜은 시장에서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해 초래된 대량실업 사태에 대한 처방의 필요성에서부터 출발하였다. 대공황은 겉으로는 공급과잉 때문이라고 하지만 공공부문의 시장개입이 금기시됐던 당시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점으로 나타난 시장의 실패에 해당한다. 즉, 유효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해 대량실업이 발생하였고, 대량실업은 시장수요를 더욱 위축시켜 결국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갔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더라도 수요와 공급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접점을 이루고 경제가 원활하게 작동하리라는 고전적 자본주의 시장원리는 무력해졌다.
    1932년 대공황으로 미국에서 1,300만 명의 대량 실업자가 발생한 상태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미국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Roosevelt(1982-1945)는 ‘뉴딜(New Deal)’을 선언하고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시장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부역할을 강조하였다.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1933년 3월부터 특별 의회를 소집하고 6월 16일까지 소위 ‘백일회의’를 개최하여 경제불황대책을 논의하였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루즈벨트 미국 정부는 ‘뉴딜정책’의 내용인 긴급은행법, 농업조정법, 테네시강 유역개발공사(TVA) 설립 등 자유방임주의를 포기하는 입법을 추진하였다. 이렇게 시작한 미국 정부의 뉴딜도 기대했던 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미국이 전쟁물자 생산기지 역할을 하면서 미국경제는 살아났고, 뉴딜에 대한 평가도 모호하게 되었다. 미국의 뉴딜은 상당부분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분에 넘치는 찬사를 받으며 과대 포장되었기 때문이다.
    한국판 뉴딜의 필요성에 대한 정부의 인식은 첫째, 저성장과 양극화에 대응하기 위해 경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둘째, 코로나19 충격이 전례 없는 경기침체를 초래하여 이에 대한 대응정책이 요구되며 셋째, 위기극복과 코로나19 이후 글로벌경제를 선도할 수 있는 국가발전전략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데 있는 것 같다. 한국판 뉴딜 추진계획은 디지털(Digital) 뉴딜과 그린(Green) 뉴딜 등 두 축으로 형성되어 있다. 디지털 뉴딜은 134조 원을 투입하여 일자리 33만 개를 창출한다는 것이고, 그린 뉴딜은 120조 원을 투입하여 일자리 133만 개를 창출한다는 내용이다. 즉, 한국판 뉴딜은 최근의 어려운 상황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극복하여 한국을 세계경제의 선도국가로 전환한다는 새로운 경로(path)를 표방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발전 경로를 마다할 국민은 아무도 없다. 즉, 모든 국민은 ‘한국판 뉴딜’이 성공하기를 바라면서 내세우고 있는 결과나 목표에 큰 기대를 걸 것이다. 그러나 모든 계획이 그렇듯 당초 계획대로 재원을 투입하고 시간을 기다린다고 하여 제시된 목표가 저절로 실현되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사회는 현재의 문제인식을 외면하기 일쑤이고, 수단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들기 마련이다. 사회가 현재처럼 다기화되지 않았고, 복잡하지 않았던 1930년대에도 미국 정부는 고질적인 대공황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상당 기간 광범위하게 고민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미래 있을 수 있는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사회 유연성과 계획의 실행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오차를 조정할 수 있는 회복력을 동시에 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의 뉴딜은 많은 비판을 받으며 그 효력을 의심받았다.
    이러한 미국의 뉴딜 경험을 고려하여 한국판 뉴딜이 성공하고 우리나라가 또다시 도약하여 세계경제를 선도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한국판 뉴딜이 우리 사회에 대전환점을 마련하고 미래 한국을 도약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보완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는 ‘한국판 뉴딜 추진계획’의 접근방식을 보완하여야 할 것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우리는 희망을 포기해선 안 된다. 그러나 계획이 희망에 근거하여 수립되고 그러한 희망이 계획의 정당성으로 둔갑한다면 일종의 역설적 상황을 자초하기 쉽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미래를 향한 계획은 사전에 정당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아무리 먼 미래를 향한 계획도 현재의 논리에 근거하여 수립되고 인정받을 수밖에 없다. 불확실한 미래 예측으로 계획을 수립한다면 그 계획으로 인해 미래가 더욱 불확실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되면 계획이 내세우고 있는 목표는 더욱 요원해진다. 계획경제가 미래를 위한 발전보다는 체제안정에 무게를 두었던 이유다.
    체제안정에 초점을 두다 보니 계획경제는 항상 큰 정부를 필요로 했다. 목표에 안달하던 계획경제는 급기야 모든 구성원의 욕망까지도 관리대상으로 삼았다. 계획경제를 표방한 사회가 유연하지 못한 이유다. 계획경제가 개인의 창의성을 억제하여 결과적으로 전체의 행복을 축소하는 결과를 낳았다. 개별 국민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들었고, 이 과정에서 국민은 협력이 아닌 먹이경쟁을 일삼는다. 전체 사회를 계획의 대상으로 삼았던 공산주의 국가들이 국민을 비굴한 프롤레타리아로 만든 원인이다. 개별 주민이 합하여 전체 국민을 만들지 국민을 임의로 나누어 개별 주민을 만들지 못한다. 따라서 전체 사회를 우선하는 체제가 개별 주민들의 희망을 실현시키지 못한다. 부(富)는 공공부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민간부문에서 창출된다. 큰 정부는 민간부문의 창의적 생산역량을 위축시키며 총체적인 부를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점이 한국판 뉴딜을 보완할 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한국판 뉴딜의 구조적 결함을 보완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판 뉴딜의 두 축인 디지털(digital)과 그린(green)은 이 시대 인류문명의 공통적인 과제에 해당한다. 미래학자들도 이 두 축을 ‘거대한 추세’로 지목하고 있는 것만 봐도 한국판 뉴딜의 내용으로 ‘디지털’과 ‘그린’은 손색이 없다. 하지만 누구를 위한 ‘디지털’과 ‘그린’인가를 고려하여야 한다.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 추진계획을 보면 디지털 뉴딜은 D.N.A 생태계 강화, 디지털 포용 및 안전망 구축, 비대면 산업육성, SOC 디지털화, 그린 뉴딜은 도시·공간·생활 인프라 녹색전환, 녹색산업 혁신 생태계 구축, 저탄소·분산형 에너지 확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뉴딜은 기존 경제주체와는 다른 혁신적 인재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이번 한국판 뉴딜이 새로운 혁신을 따라가기 어려운 낙오자를 양산할 가능성도 있다. 표현에서는 포용을 내세웠지만 디지털 산업의 내용은 포용하기 어려운 경제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뉴딜로 뒤처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챙길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한국판 뉴딜의 주체가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 뉴딜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근거하려면 혁신적인 변화의 역군(change agent)을 필요로 한다. 즉, 뉴딜의 내용은 혁신적 인재 없이는 추진될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뉴딜의 내용을 구체화할 수 있는 새로운 인재 양성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에 이어 교육 뉴딜이 필요한 이유다. 한국지역개발학회는 정부의 ‘한국판 뉴딜 추진계획’이 발표된 보름 뒤인 2020년 7월 29일 “지역발전과 지역혁신을 위한 교육 뉴딜과 K 뉴딜의 성공조건‘에 관한 긴급 정책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한국판 뉴딜이 성공하려면 이의 주체인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뉴딜’이 필요하다는 보완점이 도출되었다.
    학자의 본분은 연구와 교육이다. 이에 더하여 요즘 학자들에게 요구되는 또 하나의 덕목은 사회봉사다. 그러나 사회봉사가 잘 못 해석되어 학계를 혼탁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모름지기 학자는 정부가 잘하고 있는 일에 굳이 앞장서서 박수칠 필요가 없다. 다만 학계는 정부가 소홀히 하거나 놓치고 있는 것을 챙겨 건의하고 혹은 실패한 일을 분석하여 원인을 밝혀내며 다시는 그러한 시행착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대안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지역개발학회가 정책토론회를 통해 검토한 사안들이 보완되어 한국판 뉴딜이 성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