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정부는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제시했다. 디지털 뉴딜 12개, 그린 뉴딜 8개, 안전망 강화 8개 등 총 28개의 추진과제를 설정했다. 그리고 디지털 뉴딜에서 데이터 댐, 지능형 정부, 스마트 의료 인프라의 3개, 디지털‧그린 융복합에서 그린 스마트 스쿨, 디지털 트윈, 국민안전 SOC 디지털화, 스마트 그린산단의 4개, 그린 뉴딜에서 그린 리모델링, 그린 에너지,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의 3개 등을 10대 대표과제로 선정했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의 성공을 위하여 몇 가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의 과거 및 미래의 정책과의 관계이다. 노무현 정부의 지역혁신체제(RIS),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문재인 정부의 제4차 산업혁명, 소득주도성장에는 공통점이 있다. 상이한 명칭과는 달리 혁신과 새로운 성장동력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또 불행하게도 실패한 정책, 적어도 기대 이하의 목표를 달성한 정책이라는 공통점이다. 이전 정책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지도 않았다.
어떤 정부이던 이전의 정부와 차별화하려고 한다. 또 이전 정부의 성과는 축소하고, 현 정부의 성과는 과장하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정부의 정책도, 이전 정부의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현 정부의 토대는 이전 정부의 성과와 분리되기 힘들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정책이,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이름만 바꾸고 옷을 갈아입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정부마다 정책의 이름은 바뀔 수 있지만, 신성장동력과 혁신을 추구하기 위한 목표는 일관되어야 하고, 반드시 성과가 나타나고, 다음 정부의 토양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많은 정책들이 장미빛 청사진만 제시하고 정책을 추진하다 실패하고 난 뒤, 정치인들은 숨어버리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되어 왔다.
『탈무드』란 책의 한 이야기 중에, 어떤 사람이 과일나무를 심는 노인에게 조롱하는 투로 “생전에 먹지도 못할 과일나무를 왜 심느냐?“ 고 묻자, 노인은 자랑스럽게 ”내 손자가 먹을 과일나무를 심는다네“라고 대답한다.
둘째, 한국의 경제상황이다. 한국은 일본과 중국과 경쟁하여야만 한다. 일본은 1968년부터 2009년까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었고, 2000년도 이후 노벨상 수상자는 미국에 이어 2번째로 많다. 중국은 2010년부터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약 2000조원이다. 이는 미국의 7%, 중국의 10%, 일본의 30%이다. 한편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약 70%이다. 미국의 약 20%, 일본의 약 28%, 중국의 약 34%보다 훨씬 높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일본과 중국 사이에 위치하면서, 두 나라와 경쟁하여야 한다. 또 무역의존도가 높아,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멀리 보고 긴 호흡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하여야 한다.
셋째, 한국의 기업환경이다. 통계를 보면 기업에서 3,000여개의 아이디어 중 1개가 상업화에 성공한다. 국제경영개발원(IMD)가 2019년 제시한 한국의 정책투명성지수는 조사대상 63개국 중에서 42위였다. OECD가 제시한 한국의 상품시장 규제지수는 1.71로 조사대상 36개국 중 4번째로 강했다. 2020년 9월 2일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21대 첫 정기국회 시작에 앞서 지난 3개월간 의원들이 발의한 규제 관련 법안은 412개로 집계됐다. 2014년에서 2019년까지 한국의 유턴 기업(리쇼어링)은 연평균 10개 정도였다. 한국의 기업환경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국민간의 경제적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 1997년 아시아금융위기는 성공적으로 극복되었지만, 양극화는 심해졌다. 대한민국은 성장과 분배의 딜레마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균형적인 시각을 가지고 포퓰리즘을 배제하여야 가능하다.
넷째, 한시적 정책이 아닌 장기적 정책이, 시혜적 복지가 아닌 생산적 복지가 필요하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은 서민들에게 더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재난지원금도 필요하다. 한번 붕괴된 서민경제는 쉽게 회복되지 않으며, 서민경제의 붕괴는 결국은 고스란히 한국경제의 부담으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재난지원금은 국가부채를 증가시킨다. 국가부채의 증가는 다음 세대의 부담이다. 현재 서민과 자영업자 등을 살리기 위해 투입하는 재난지원금이 지금은 국가부채를 증가시키지만, 결과적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경제를 살리고 세금으로 돌아와 국가부채를 감소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 시점에서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통해서 기여해야만 한다. Output을 고려하지 못하는, input은 무능함 내지는 무책임이다.
다섯째, 재원조달 방법과 정책연속성이다. 2022년까지 67조 7000억원을 투입하여, 89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2025년까지 160조를 투자하여, 19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목표이다. 하지만 투자비 조달 방안이 없다. 더구나 2025년은 현 정부 임기 이후이다.
여섯째, 로드맵의 설정과 중간중간 성과 측정이다. 2025년까지의 로드맵이 설정되고, 각 단계별 목표와 성과를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160조를 투자하여 19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하려는 원대한 계획에 로드맵, 단계별 목표, 성과 측정 방법이 없을 수 없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이 추구하는 목표가 달성되었을 경우와 달성되지 못하였을 경우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정책의 수정과 보완 방법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인 영국의 Lewis Carroll은 1871년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발행했다. 이 책에서 주인공 앨리스가 열심히 달리지만 오히려 앨리스는 뒤로 쳐지고 있다. 주변 환경이 앨리스보다 더 빨리 앞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붉은 여왕은 주인공 앨리스에게 ‘제자리에 있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뛰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움직일 때 주변 세계도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내가 변하더라도 세계가 더 빨리 변하면, 나는 뒤쳐진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은 첨단산업 분야이다. 정부 초기에는 많이 사용되다가 이제는 용어조차 잠잠해진 4차 산업혁명과도 연관이 있다. 어떠한 정책도 100% 성공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환경이 급격하게 변한다. 중간중간 목표를 측정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원인을 분석하고 정책의 수정과 보완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여덟째, 상충효과(trade-off)를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면 그린 뉴딜이 원자력의 포기를 의미해서는 안된다. 대안을 모색하지 않는 원자력 발전 일변도의 정책은 수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당장 원자력 발전 보다 경제성이 높은 대안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원자력 발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다른 대안에 대한 연구를 병행하여 대안의 경제성을 높여야 한다. 극단적으로 완벽한 대안이 발견되어 원자력 발전이 모두 사라진다고 하여도, 원자력에 대한 연구가 중단되어서는 안된다. 원자력 발전을 하지 않는 것이, 원자력 연구를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해서는 안된다. 원자력 발전이 사라진다고 하여도, 원자력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어야 하며, 연구인력 등 생태계가 파괴되어서는 안된다. 원자력은 전기발전, 핵무기 이외에, 의학, 산업, 과학연구 등 광범위한 분야에 응용된다. 의학에는 방사선 치료, 산업에는 비파괴 검사, 선박 엔진, 국방에는 잠수함 등에 활용된다. 2028년 운영이 시작될 4세대 다목적방사광가속기는 가장 가벼운 전자를 가속시켜 빛을 이용해 원자, 분자 수준의 근원적 구조를 관찰하는 장비이다. 일본에서 한국에 대해 수출규제품목으로 지정했던 반도체 관련 소재에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트스(photoresist)가 있다. 일본은 방사광가속기에서 나온 극자외선(EUV)으로 포토레지스트의 성능을 지속적으로 개선해서 세계적인 기술 경쟁력을 확보했다. 비아그라와 타미플루도 방사광가속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홉째, 실패 비즈니스가 필요하다. 실리콘 밸리에는 약 300만명이 거주한다. 꿈을 찾아 모여든 전 세계의 수재들로 인하여 집값이 상승하고, 집을 못구해 노숙하는 미래의 벤처창업가도 많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직장을 구할 능력이 없어서 소득이 없는 노숙자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실리콘 밸리의 벤처의 성공률은 약 5%이며, 실리콘 밸리의 성공한 창업자의 평균창업 횟수도 2.5회 정도이다. 한편 한국의 국책 R&D의 성공률은 약 90%이다. 도전한 자만이 실패하고, 그 실패를 경험삼아 성공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합법적 규정을 준수하고 최선을 다하여도 실패할 수 있다. 이럴 경우에는 책임을 면해주고, 다시 기회를 주어야 한다. 어려운 주제일수록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실패할 확률도 높다. 특히 정부가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면서 성공사례만 홍보하고, 실패사례를 숨기지 말아야 한다. 실패경험도 소중한 자산이다. 실패경험을 공유하고 반복하지 않는 ‘실패 비즈니스(Failure Business)’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