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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

전셋집을 구하며 피부로 느낀 청년주거정책

구한민(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석박사통합과정)

    2011년,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불가능한 청년의 불안정한 경제적 지위를 조명하며 ‘삼포(三抛)세대’라는 신조어가 등장하였다. 청년에 대한 과도한 삶의 비용이 이들로 하여금 연애, 결혼, 출산 등 가족 구성에 필요한 통상적인 세 단계를 포기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후 청년은 인간관계, 내 집 마련 등 더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되었고, ‘오포세대’, ‘칠포세대’, ‘구포세대’로 불리더니 급기야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포기한 ‘N포세대’로 불리고 있다.
    연애, 결혼, 출산, 조금 더 양보하면 인간관계의 포기까지만 해도 통과의례에 대한 인식의 변화, 혼자된 삶을 추구하는 ‘혼족’, ‘나홀로족’의 등장과 같은 문화변동의 측면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내 집 마련의 포기는 청년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가해지는 사회적, 경제적 압박에 따른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내 집 마련은 언감생심. 이들은 당장 ‘적절한 주거(adequate housing)’의 권리를 포기하고 있다. 쉽게 말해, 많은 청년이 주거비 과부담이나 열악한 주거환경 등 주거불안정(housing instability)에 내던져진 것이다1.
    청년의 주거문제는 인간의 생애주기상 매우 중요한 이슈로 해외에서는 일찍부터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해법 모색이 꾸준히 이루어져 왔으나2, 우리나라에서는 그간 사회적 관심의 밖에 있었다3. 하지만 2007년 ‘88만원세대’로 촉발되어 ‘3포세대’, ‘N포세대’, ‘금수저-흙수저’ 등으로 꾸준히 이어진 청년 담론은 기성세대로 하여금 청년층을 정책대상으로 인식하게 하였다. 그 결과 현재 중앙정부·지자체는 청년에게 초점을 맞춘 다양한 주거정책을 내놓고 있다. 필자는 최근 직접 전셋집을 구하면서 연구대상으로만 마주하던 청년주거정책을 피부로 느낄 기회를 ‘강제로’ 가지게 되었다. 이에 평범한 청년의 개인적 경험에서 발로한 문제의식을, 전공자의 시선에서 정책제언까지 연결하여 보고자 한다.
    우선 청년주거정책에 있어 정책대상으로서의 ‘청년’을 더욱 세분화하여 접근하면 좋겠다. 목돈 마련과 신용 대출이 쉽지 않은 대학원생의 신분인 필자는 애초 전세와 월세의 절충적인 형태인 반전셋집을 구하고자 하였으나, 이에 알맞은 지원정책을 찾을 수 없어 전셋집을 알아보게 되었다. 2020년 제정한 「청년기본법」에서는 청년을 “19세 이상 34세 이하인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해당법은 청년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지원을 위하여 제정한 것으로 청년주거정책 수립의 법적·제도적 근간이다. 주거복지정책에서 청년은 단순히 연령대로만 포괄할 수 없다. 이 연령대에는 부모의 경제적인 지원이 지배적으로 작용하는 대학생, 학업을 이어나가며 일시적인 소득이 발생하는 대학원생, 일자리를 구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사회초년생 등 다양한 형태의 청년이 있기 때문이다. 청년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정책 수요가 있겠으나, 여러 상황에 놓인 청년을 가능한 한 촘촘하게 지원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다각화해야 한다.
    다음으로 청년에게는 주거문제 곧 경제문제임을 반영하여 정책을 설계하여야 한다. 필자가 전셋집을 선택한 이유는 비슷한 컨디션의 주택이라도 전월세전환율과 대출금리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월세보다 전세일 때 주거비 부담이 더욱더 작기 때문이다. 주거비 부담이 낮으면 안정적인 자산형성을 도모할 수 있다. 이는 필자만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다. 지난 8월 발표된 『2020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청년가구가 원하는 주거지원은 ‘전세자금 대출지원(39.1%), ’주택 구입자금 대출지원(23.4%), ‘월세보조금 지원(16.3%)’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이 소비재이자 자산 증식을 위한 투자재로 인식되는 우리나라에서 최근 청년들은 부동산 활황으로부터의 소외를 걱정하는 ‘포모증후군(FOMO syndrome)’까지 겪고 있다. 따라서 청년의 주거사다리를 이을 공공임대주택의 공급도 꾸준하게 이어져야 하겠으나, 우리나라 전체 임대주택의 80%가 민간임대주택이라는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청년의 자산형성을 원활하게 돕는 주거보조금(housing subsidy) 제도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주거보조금은 청년의 양극화에 대한 교정적인 성격을 지니므로, 청년가구의 소득과 자산상태를 반영하여 차등적으로 지급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추가적으로 각 광역지자체별로 청년이 수혜할 수 있는 주거정책에 대한 포괄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필자가 전셋집을 구하기로 마음먹고서 가장 먼저 봉착한 난관은 상황에 적합한 프로그램을 찾고 고르는 것이었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복지포털 ‘복지로’에서는 각 지자체의 정책이 상시적으로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었고, 서울청년포털, 경기청년포털 등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청년포털에서는 중앙정부와 금융공기업에서 제공하는 정책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시, 경기도 등 광역지자체 내 기초지자체의 주거정책도 있었는데, 어디에 어떤 정보가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산재한 청년주거정책 관련 정보를 총괄하여 제공하는 원스톱 플랫폼이 있으면 보다 다양한 정책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순수한 공공정책에 국한하지 않고 금융공기업과 민간기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상품도 함께 확인할 수 있으면 더욱 편리할 것 같다. 이러한 플랫폼은 청년주거정책의 자율성과 실행성을 고려하였을 때, 주거기본법상 시·도 주거종합계획의 수립 주체인 광역지자체 단위에서 운영하는 것이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1. 이현정, 김진영. (2020). 민간임대주택 거주 청년 임차가구의 임차유형별 지역에 따른 주거비 및 주거불안정 문제 경험 실태: 2017년 주거실태조사를 중심으로. 가정과삶의질연구, 38(2), 69-82.
  2. 박미선. (2017). 한국 주거불안계급의 특징과 양상: 1인 청년가구를 중심으로. 공간과사회, 27(4), 110-140.
  3. 이태진, 김태완, 정의철, 최은영, 임덕영, 윤여선, 최준영, 우선희. (2016). 청년 빈곤 해소를 위한 맞춤형 주거지원 정책방안. 세종: 한국보건사회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