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지역발전과제
삶의 질과 지역발전
구교준 (고려대학교 교수)

산업화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는 경제발전이라는 한 방향만을 보고 정신없이 달려왔다. 그 결과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도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가지는 성공적인 경제발전 모델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및 노인빈곤율 1위라는 어두운 현실도 동시에 존재한다. 그 동안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면 소득 1만불에서 2만불로, 그리고 3만불로 성장할 수 있을지와 같은 양적 질문에만 몰입하다 보니, 같은 소득 1만불 혹은 2만불이라도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질적 질문에는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정부가 국민행복을 내걸고 출발하였지만 말 뿐이었고, 우리 사회의 정치 행정 담론에서 행복이나 삶의 질과 같은 이슈가 실질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 반세기 동안의 양적성장으로 쌓인 우리 사회의 모순이 이제는 거의 한계점에 도달하였다.
지역발전 담론도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모두가 지역의 양적, 경제적 발전에만 몰입해 왔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지역 간 격차에 관한 논의도 주로 경제적 격차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지역마다 처해 있는 상황과 특징이 다른데, 획일적인 양적 경제성장이 이들을 모두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지역 주민의 행복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질적 발전을 위해선 지금까지와는 조금은 다른 접근이 요구되며, 차기 정부에서는 특히 지역발전 정책에 있어 다음의 두 가지 점을 염두해 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우선 질적인 지역발전을 위해선 양적 경제적 지향점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지향점이 필요하며, 그 해답은 아마티아 센이 강조한 삶의 역량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삶의 역량이란 개인이 가치를 두고 있는 무언가를 추구할 수 있는지의 기회와 가능성을 의미한다.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보건),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지(교육), 신체적 위해로부터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한지(안전) 등이 좋은 예인데, 이러한 역량은 따라서 개인 삶의 질적 수준과 직결된다. 양적 성장 중심의 지역발전을 위해선 낙후지역에 공장 짓고 일자리 만드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역량 중심의 지역발전을 위해선 이러한 노력이 지역의 보건과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더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특히 보건과 안전 분야의 지역 간 격차가 경제적 격차 만큼이나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역발전에 있어 역량 중심으로의 지향점 전환은 질적 지역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첫 단추가 될 것이다.
질적인 지역발전을 위해 두 번째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맞춤형 지역발전이다. 최근 한 정치인의 글에서 흥미로운 사례를 접한 일이 있다. 충남 서천의 달고개 모시마을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마을에서는 팔순이 넘은 주민 50가구가 함께 모시떡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 주민들은 매일 반나절 함께 일하면서 행복을 느끼며, 그래서인지 기계를 들여다 생산성을 높이고 소득을 올리는 데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이런 지역에서 양적 성장 중심 개념인 생산성과 경쟁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맥락에서 너무나도 벗어난 공허한 이야기가 된다. 좀 극단적인 사례인지 몰라도 모시마을 이야기는 중요한 시사점을 가진다. 주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질적인 지역발전을 위해선 지역의 맥락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필요하고, 따라서 지역적 성격을 고려한 맞춤형 지역발전 전략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맞춤형 지역발전을 위해선 지역발전 전략의 기획과 집행 과정에서 지방정부의 역할 강화가 필요하며, 이는 현행 지방자치제도의 심화 발전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지역발전에 있어서도 지난 반 세기의 양적 성장 중심 패러다임은 이제 소임을 다했다. 앞으로 펼쳐질 반 세기에는 개인의 행복과 삶의 질을 지향점으로 하는 지역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차기 정부는 그 첫 번째 단추를 끼울 막중한 소임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