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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

지역주의와 지역패권정당체제의 균열? : 영남지역의 경우

장우영(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우리나라 지방선거의 기본적인 성격은 주요 정당을 위시한 기성 정치체제의 경합장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동북아 유교문화권의 오랜 중앙집권체제 전통이 내성화되어 있고, 민주화 운동의 산물로서 지방자치가 복원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취약한 분권자치 패러다임과 함께 지방선거에서 권력경쟁의 성격이 매우 강하게 표출되었다. 둘째, 지역정당이 부재하고 정당공천제를 토대로 양대 정당 중심으로 후보들이 정치시장에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적 조건은 정치 신인이나 풀뿌리 후보들이 기성 정당을 우회하여 지역정치시장에 진입할 문턱을 크게 높이고 있다. 셋째, 지역 현안 중심의 정책선거 여론이 비등하지만, 실제로는 정부심판론이 선거정치 프레임을 구축해왔기 때문이다. 부연하면 전통적으로 여야대결이 첨예하고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기제가 없는 현실은 쉽게 반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넷째, 국회와 중앙정부 외에 지방자치단체가 새로운 대선후보 공급 채널로 등장했기 때문이다(장우영·임정빈, 2010; 박명호·한기영. 2011). 6회 지방선거는 이를 더욱 뚜렷하게 보여주었는데, 유력 정치인의 차출로 지방선거는 사실상 전국 기반의 중앙정치 연장전으로 치러졌다. 우리나라 선거에서 지역주의라는 구조적 변수가 가지는 영향력은 논외로 할 수 없다. 지역주의는 지배적인 선거 결정요인으로, 특히 패권정당체제가 결빙된 지역에서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무모한 쟁투에 가깝다는 평가가 현실적이다. 우리사회와 같은 지역할거 정당체제에서는 후보선택 기준으로서의 정당은 곧 지역을 의미하며, 연고정당에 대한 과대 지지는 지역주의 투표와 동일시된다(조성대, 2000).
     지역주의는 개인 이익의 총합이 공동체 이익의 크기가 같지 않다는 합리성의 역설을 드러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좋은 선택이 가져오는 나쁜 결과는 정당하다. 동시에 반복적으로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좋은 선택은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 마땅하다. 지대추구(rent-seeking),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와 같은 개인 차원의 좋은 선택이 초래하는 결과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탈지역주의라는 규범과 지역주의라는 실체는 양립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느 미래시점에서는 규범이 새로운 실체로 전환되거나, 반대로 실체가 규범을 제압하는 상황을 가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점까지 양자 간의 길항작용이 부단하게 전개될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한국정치사에서 지역주의 실체가 탈지역주의 규범을 제압하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이 착근되어온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특히 선거를 통한 지역주의 돌파 실험이 번번이 좌절되었다는 점에서, 7회 지방선거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인지는 중요한 관심사이다.
     영남지역 선거의 경우 중앙정치에 대한 의존과 예속이 더욱 강하게 나타났으며, 지방정치 차원의 독자적인 의제가 존재하지 않아 자율성이 매우 취약한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지역이라는 정치시장은 정당과 정치엘리트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정치자원이다. 따라서 연고 정당은 전략적으로 유권자들을 동원하고 유권자들은 지역을 대표하는 정당에게 집중적으로 투표하는 퇴행적 정치관행이 지속되었다. 단적으로 6회 동안의 지방선거에서 영남지역의 유권자 투표 행태는 변화보다는 일관된 연속성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오랜 기간 동안 의미 있는 경쟁과 대항 정치세력의 충원을 불허하는 자유한국당 중심의 패권정당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런데 6회 지방선거에서 영남지역의 탈지역주의의 전조가 싹트기 시작하였다. 가령 부산과 대구는 후보 득표율과 정당 득표율 간의 편차가 가장 크게 나타난 지역이었다. 그만큼 야당의 인물본위 선거가 맹위를 떨친 결과로, 지역주의의 최전선이자에서 수확한 경이로운 득표율로 평가할 수 있다. 오거돈 후보의 경우 서병수 후보에게 불과 1.3% 차로 따라붙으며 석패하였다. 오후보는 전체 선거구에서 40% 중반대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였으며, 5개 선거구에서는 서후보를 앞서는 전과를 거두었다. 김부겸 후보는 대구의 야당 후보 최초로 40%대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전하였다. 반면 권영진 후보는 후보 득표율 기준 정당 득표율과의 마이너스 차이값이 가장 큰 -13.97%를 기록하였다. 김후보는 전체 선거구에서 30%대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였고, 특히 교육·소득 수준이 가장 높은 수성구에서는 권후보와 거의 동률을 기록하였다. 아울러 김후보가 선전한 부산물로 새정치연합은 기초의원 13명을 배출하였는데, 5회 지방선거에서 4명에 불과하였다는 점에서 상당한 약진이었다.
     그러나 일반적 공감에도 불구하고 두 후보의 선전이 인물 효과에서 비롯되었는지 단정할 수만은 없다. 그래서 설문조사 자료를 근거로 추론적으로 검토해보기로 한다.
<표 1>은 한국정치학회가 6회 지방선거 직후 실시한 유권자 의식조사 결과이다. 영남지역이 당시 새누리당의 본산이기 때문에, 정당본위 투표가 우세할 것이라는 예단이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국 평균과 큰 차이가 없는 투표행태를 보여주었다. 부산․울산․경남의 경우는 인물 요인이 가장 주된 선택 기준으로 나타났으며, 대구․경북은 인물 요인이 정당 요인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는 부산과 대구 시장선거에서 야권 후보의 약진을 추론하는데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표 1> 6회 지방선거 투표자의 후보 선택 기준 (%)

  인물본위 정책본위 정당본위 무응답
전국 (882명) 35.5 32.8 31.5 0.2
부산․울산․경남 (137명) 34.8 34.6 30.6 0.0
대구․경북 (91명) 31.9 31.0 37.1 0.0
※ 출처: 한국정치학회(2014).

     이렇듯 6회 지방선거에서 탈지역주의 흐름이 매우 가시적으로 나타났다. PK 지역주의는 종래의 약화 추세가 더욱 현저해졌고, TK 지역주의는 고소득·식자층이 밀집한 수성구를 중심으로 약화되는 추세를 보였다. 특히 김부겸 후보가 새정연 당적을 보유한 상태에서 19대 총선에 이어 6회 지방선거에서도 40%대 지지율을 기록한 점은 상기할 만한 대목이다. 이는 김후보가 20대 총선에서 승리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물론 이를 자유한국당에 대한 지지 철회나 지역주의의 구조적인 균열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PK 지역의 경우 최근의 선거들에서 야당 지지율이 균일하게 상승하고 있는 것은 의미 있는 변화이다.

<표 2> 최근 선거에서의 부산․대구 정당 득표율 변화 (%)

  부산 대구
연고정당 비연고정당 연고정당 비연고정당
2010년 지선 55.4 44.6 72.9 27.1
2012년 대선 59.8 39.9 80.1 19.5
2014년 지선 50.7 49.3 56.0 40.3
※ 2010년 지방선거 야당 득표율은 야권연대를 감안하여 야권 전체의 득표율을, 2014년 지방선거는 제1 야당의 득표율을 산정한 것임.

     요컨대 탈지역주의의 가시적인 흐름은 긍정적이지만, 비연고정당의 인물본위 전략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부산·대구시장 선거에서 탈지역주의의 절반의 성공은 곧 절반의 실패를 의미한다. 그것은 곧 인물선거의 성과와 한계이기도 하다. 3김 리더십의 퇴장 이후 인물선거의 최초 성공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회자된다. 그러나 인물을 넘어서는 정책이 결합되지 않음으로써, 더 이상 탈지역주의 흐름을 추동하지 못하였다. 또한 인물선거는 정당을 배제한 정치적 사인화(political personalization) 전략이기 때문에 책임정치의 측면에서 문제를 드러낸다. 즉 일상정치에서 정당의 탈지역주의 정책 시도 없이, 선거정치에서 유력 후보를 투입하는 식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7회 지방선거에서 정당의 책임정치에 토대한 선거전략과 본령을 넘어서는 탈지역주의의 흐름을 목도할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참고문헌>

박명호·한기영. 2011. “한국 지방정치 엘리트 충원의 계속성과 변화에 관한 시론: 최근 지방선거를 중심으로.”『한국정당학회보』10(2). 93-131.
장우영·임정빈. 2010. “지방선거정치의 제도, 이슈 그리고 선거캠페인.”『한국정책연구』10(2). 319-344.
조성대. 2000. “인물론과 지역주의: 4ㆍ13총선 부산 북ㆍ강서을 노무현의 사례.”『사회비평』24. 157-169.
한국정치학회. 2014.『6회 지방선거 유권자 정치의식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