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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기고

지역개발의 방향과 전략
– 자유로서의 발전, 지속가능발전, 참진보지수(GPI)-

문태훈(중앙대학교 교수)

     삶의 질 향상과 행복한 삶을 위한 많은 정치공약과 정책노력이 경주되고 있지만 관련 지표값들은 암울하다. OECD 삶의 질 지수(Better Life Index)에서 한국은 OECD 38개국 중 29위(2017, 2014년 25위), 인구 10만명 당 자살률 26명으로 2003년 이후 지금까지 OECD 국가중 에서 계속 1위(OECD 평균의 2배), 노인 자살률은 53.3명으로 평균 자살률의 2배, 청년실업률 9.9%(2017년 말)로 역대 최악, 지니계수 0.304(2016, 2015년 0.295), 합계출산률 1.05(2017, 2016년 1.17) 등이다.
     경제학의 마더 테레사로 불리며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던 인도의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은 발전의 궁극적인 목표를 사람들이 향유하는 실질적인 자유를 확장하는 것으로 보았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증대시키는 것이 자유의 확장이고 이것이 발전의 요체라 본 것이다. 예컨대 실업은 단순히 정부의 분배로 메울 수 있는 소득의 결여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동기, 재능을 심각하게 악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 자유가 축소되는 것이며 이것은 자유로서의 발전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때 국가와 사회는 개인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실질적 자유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의 저변을 늘리는 보조적 역할을 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지역개발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 격하된 지역발전위원회의 명칭도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로 회복되었다. 현 정부의 균형발전의 비전은 지역이 강한 나라, 균형잡힌 대한민국이며 목적은 지역간 불균형 해소, 지역특성에 맞는 자립적 발전,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이다. 정부의 지역발전 정책이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센의 관점을 빌리면, 지역개발은 도시, 농촌, 어촌, 산촌 어느 곳에 살거나 각자가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실현할 수 있는 지역, 그래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지역을 만드는 것이다. 지역개발을 둘러싼 기존의 논의도 이런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지역개발은 중앙이 중심이 되는 하향적이고 외생적인 발전이 아니라 지역의 역할과 자원을 중시하는 상향적이고 내생적 발전으로, 그리고 경제성장 우선개발에서 환경보전, 사회발전, 경제발전을 동시에 보장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 온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지속가능발전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유로서의 발전이란 큰 목적을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국제적인 동향도 기후변화, 4차산업혁명, 일자리부족, 고령화, 양극화와 갈등의 심화 등 여러 환경적인 변화와 더불어 유사한 주장과 흐름을 보이고 있다. 유엔은 2015년 국제사회가 2030년까지 공동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로 지속가능발전을 내세우고 17개 분야별 목표와 169개의 세부목표(UN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제시하고 있다. 2017년 유엔해비타트III 회의도 기존의 거주지 중심 의제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신도시의제로 의제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이런 동향의 공통된 핵심가치는 참여와 포용이다. 그러나 이런 가치와 세부적 목적 역시 궁극적으로는 각자가 원하는 것을 실현할 수 있는 자유를 확장시키는 발전으로 귀결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지역개발은 해야 할 일이 많다. 아직 우리는 여전히 양적성장을 우선하는 기존경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야 할 일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그 중 한가지는 앞서 제시한 자유로서의 발전을 제대로 측정하여 현재 우리의 위치를 알게 하고 정책의 방향과 전략을 알려주는 지표를 발전시키고 활용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발전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지표는 국내총생산(GDP)이나 지역총생산(GRDP)이었다. 그러나 국가나 지역발전의 지표로서 GDP나 GRDP가 부적절하다는 점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GDP는 세계2차대전 당시(이때는 GNP) 국가의 전시 생산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표가 국민들의 삶의 질, 복지 수준의 발전 정도를 측정할 수는 없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전시생산능력 지표를 발전과 복지의 지표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GDP의 문제는 지속가능한 것과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금전거래는 복지수준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가정한다. 그래서 울창한 삼림을 베어내고 자원을 고갈시키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행위, 파괴된 자연을 복원하고 오염된 환경을 정화시키는 활동들이 구분없이 모두 GDP에 추가된다. 그러나 미래 생산기반이 되는 자연자원의 재고 수준이 낮아지는 것은 GDP에서 차감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가사노동과 자원봉사의 가치도 GDP에 계산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발전되어온 것이 참진보지수(GPI Genuine Progress Indicator) 와 같은 대안 지표의 개발과 적용 노력이다. 참진보지수는 기존의 GDP에서 소득불평등의 심화, 범죄의 사회적 비용, 불완전취업(Underemployment)으로 인한 손실, 여가시간의 감소, 물, 대기오염, 소음의 피해, 습지와 농지의 감소, 자원의 고갈, 이산화탄소의 피해 등을 차감하고, 공공기반시설, 가사노동, 교육, 자원봉사의 가치 등을 추가하는 등의 수정을 거친 GDP의 대안 발전지표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보정된 GPI는 국가나 지역의 경제적 번영, 사회적 형평성, 생태적 지속가능성 등을 모두 감안하면서 삶의 질, 복지수준을 나타낼 수 있는 실질적인 발전의 지표가 된다. 흥미로운 점은 GPI를 이용하여 1945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독일, 태국, 일본, 중국, 칠레, 인도, 베트남 등 세계 17개국을 평가하고 이를 GDP 변화와 비교하였는데 1970년대 중반까지는 GPI가 GDP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GDP와 같이 증가하다가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GDP는 계속 성장하는데 GPI는 일본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체 또는 감소하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1인당 GDP와 GPI를 비교해 보면 양자의 차이는 더 크게 나타날 뿐 아니라 1970년대 중반 이후 부터는 감소추세가 더욱 뚜렷이 나타나고 있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1인당 GDP가 증가하면서 GPI도 같이 성장하지만 1인당 GDP가 US$ 6,500 보다 많아지는 시점부터는 1인당 GPI가 점차 감소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양적인 경제성장은 삶의 질이나 복지수준을 오히려 감소시킨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GPI는 국가나 지역의 지속가능성의 상태를 경제, 사회, 환경의 측면에서 모두 종합해서 알려주는 유용한 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GPI는 정책의 방향을 질적인 발전, 지속가능한 발전의 방향으로 전환시키는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역의 발전지표를 GRDP대신 GPI로 대체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GPI로 평가하는 지역발전의 정도는 우리나라 지역발전에 큰 정책적 함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어느곳에서나 실현시킬 수 있는 실질적 자유가 확장되는 지역발전, 이러한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전략으로서의 지속가능발전, 그러한 발전의 정도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알려주는 GPI 같은 대안적 지표체계가 활용된다면 제대로 된 궤적을 그리는 지역발전을 실현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