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인사

소진광(한국지역개발학회장, 가천대학교 부총장)

학덕(學德)이라는 말이 있다. 단순히 알고 이해하는 단계에 그치지 않고, 알고 있고 이해하는 것을 우리 실생활에 이롭게 활용하여 인류복지에 기여하는 것은 학문의 덕목(德目)에 속한다. 내가 배워 나만을 위해 사용하는 학문은 아집을 키우고, 나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아전인수(我田引水)의 편견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높다. 학문이 나 혼자가 아닌 전체 인류복지 증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공동체를 이어주는 사회작동체계가 잘 정비되어야 하겠지만 지식과 정보를 소유한 사람의 가치관과 태도 및 행동도 중요하다. 원래 권력, 자본, 지식, 정보는 소유한 자에게 아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따라서 권력, 자본, 지식, 정보를 소유한 사람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 자본, 지식, 정보를 활용함에 있어서 약간은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공동체의 공동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창출된 권력은 이의 사용방법을 아는 사람만을 위한 처세술에 지나지 않고, 세상의 다양성을 조화시키고 순환시키도록 고안된 자본은 특권층을 부풀려 사회균형을 망가뜨리게 될 것이다. 또한 세상을 투명하게 설명하기 위해 창출된 지식은 오히려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고, 공동의 실천수단을 세우기 위해 생산된 정보는 편 가르기 수단으로 전락하기 쉽다. 학회도 학문의 존재이유였던 ‘인간탐구’의 본연을 외면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학회는 같은 분야의 ‘인간탐구’에 관심 있는 학자들의 공동체에 속한다. 따라서 학회활동은 결국 인간 본성을 충족시켜야 하고, 미진한 해당분야의 ‘인간탐구’를 보완하여야 한다. 수단에 얽매이거나, 목표에 함몰되어서는 학회라는 공동체의 존재이유를 실현하기 어렵다. 이는 지식과 정보가 단순히 존재영역에 머무르거나, 세상을 널리 보지 못하고, 가진 자에게만 유리하도록 활용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의미다. 자신의 논리가 세상이치와 조화를 이룰 수 없다면 스스로 세상의 주류에서 자신을 일탈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결코 학문의 목적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이 창출한 지식과 정보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것이고, 남이 창출한 바른 지식과 정보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학문의 자세를 거부하는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다. 남의 논리에 동감하면서도 이를 자기방식대로만 해석하거나, 자기 존재이유를 드러낼 목적으로 남의 이론을 폄하하고, 악용한다면 아집과 편견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또한 모든 학문은 ‘인간’이라는 복잡한 현상에 답하여야지 ‘인간’을 외면하거나 소홀히 다루어서는 아니 된다. 즉, 학문활동에도 지켜야 할 덕목이 존재한다. 학문을 위해서는 바로 보고(正見), 바로 생각하며(正考), 바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세워야(正論) 한다. 특히 목적을 위해 과정을 마름질하는 편법은 학문이 아니다. 학문을 통해 얻는 지식과 정보를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다.

한국지역개발학회는 1987년 설립되어 인류공동체의 발전현상과 인류환경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한국지역개발학회의 궁극적인 연구관심도 ‘인간탐구’에 있다. 다만 우리학회는 ‘지역개발학’이라는 공통주제의 성격과 관련하여 ‘인간탐구’를 주로 시간과 공간의 상호작용 관점에서 접근한다. 시간과 공간은 모두 인간의 존재영역에 가장 커다란 제약요소이자 존재영역의 가장 편리한 설명도구이다. 여타 사회과학이 그러했듯이 ‘지역개발학’도 학문의 공통주제를 외면한 적이 있었다. 연구과제도 설명변수도 ‘인간탐구’와 거리가 멀었고, 또 ‘인간 척도’를 조작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이제 우리 한국지역개발학회는 우리분야 연구방법을 ‘인간탐구’ 중심으로 전환하여야 할 시점을 맞고 있다. 우리 학회가 바로 서려면 회원 개인만의 조작적 ‘얼개’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탐구’에 기여할 수 있는 포용력과 바른 자세가 요구된다. 지역개발학은 어느 특정 자연인의 관념적 세상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하며 세상을 바로 설명하기 위한 논리를 탐구해야 한다. 더 나아가 지역개발학은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인간탐구’의 본연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 학회는 연 4회 학회지 발간을 통해 ‘지역개발학’의 맥락을 정립하고 있고, 이번 이 소식지를 통해 ‘지역개발학’의 외연을 넓히려 한다. 따라서 이 소식지는 지역개발학의 학덕을 실천하려는 노력의 통로가 될 것이다. 특히 이 소식지는 이러한 우리학회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작은 희망을 담고 있다. 흔히 희망은 씨앗과 같아서 출발 시점에서는 작지만 결국은 커다란 결실을 가져온다. 이 소식지를 통해 회원은 물론 이를 접하는 모든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인류공통의 좌표에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의 작은 씨앗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노력해주신 기정훈 교수님과 관련 회원 모두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