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쟁점
통합적 지역정책을 향하여
박경현(국토연구원 연구위원)

1. 프로야구, 그리고 수도권 집중
프로야구가 시작한지 40년이 되었다. 1982년에 개막한 프로야구는 당시 6개 팀이었다. 수도권 팀은 서울 MBC 청룡과 인천의 삼미 슈퍼스타즈가 있었고, 비수도권에는 롯데, 삼성, 해태, OB가 있었다. 6개 구단으로 시작한 프로야구는 지금은 10개 구단이 되었다. 현재 수도권 구단은 5개다. 전체의 50%다. 40년 동안 늘어난 4개 팀 중에 수도권을 연고로 하는 팀이 3개다.
2019년말 기준으로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하였다. 전국의 11.8% 면적에 대한민국 국민의 50% 이상이 거주한다. 통계청이나 인구전문가 등은 수도권 인구 비중은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계속 상승할 것이라 전망한다. 어쩌면 앞으로는 프로야구 경기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서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980년대 수도권 인구 비중이 30%를 넘겼을 때 수도권 야구팀은 33%였는데, 수도권 인구비중이 50%가 되기도 전에 이미 수도권 야구팀은 과반이었다. 논리적인 비약이지만 향후 프로야구팀이 수도권에 더 생긴다면 수도권 집중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힌트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2. ‘사람의 번영’ : 지역없는 지역정책
생뚱맞은 프로야구 얘기를 꺼낸 이유는 국토 및 지역정책에 있어 수도권 집중과 지방의 쇠퇴에 대한 지역정책의 무관심을 제기하기 위함이다. 프로야구팀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 기반이라는 사실은 관심있게 살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대부분이 모른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역으로 생각해보자. 국민들 중에 수도권에 대한민국 절반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야기하는 문제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다수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문재인 정부의 지역정책은 절반의 실패다.
참여정부 이후 추진된 균형발전은 현재진행형이다. 다양한 지역정책이 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다. 혁신도시, 도심융합특구 등 물리적 개발 외에도 교육, 주거, 관광, 문화, 보건 등 지역간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정책들이 추진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러한 지역정책에 특정 지명이나 장소가 제시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나마 회자되는 동네가 세종시, 새만금 정도가 아닐까 싶다. 지역 간 경쟁이 심화되는 구조를 고려하면 이러한 현상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되지만, ‘지역없는 지역정책’은 정책대상으로서의 지역의 정체성을 소멸시킨다. 단적인 예를 들겠다. 코로나19로 긴급지원한 재정이 310조 원에 달한다. 코로나19 지원대상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다. 그렇다면 정확하지는 않지만 수도권에 대략 155조 원 정도가 풀렸다는 얘기다.
팬데믹이라는 불가피한 상황은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청년들의 수도권 집중 심화, 지방대학 붕괴, 지역 산업위기, 심지어 지방소멸을 논할 정도로 지역의 위기는 이미 팬데믹 못지않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역에서 자기 이름을 걸고 경제, 행정, 문화, 사회기능을 공간적으로 광역화하여 통합하려는 초광역적 공간전략은 매우 의미있는 시도다.
3. ‘장소의 번영’ : 지역주도 초광역권
최근 부상하고 있는 초광역권 논의는 지역의 필요에 의해 지역이 주도한다는 데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부․울․경을 비롯하여 대구․경북, 충청권, 광주․전남 등에서 특별지자체 설립 및 행정통합 논의를 착수하였다. 지역이 주도하는 초광역권은 이제 시작단계에 들어선 수준임을 감안할 때 많은 연구와 정책적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균형발전 측면에서 보면 초광역권은 수도권에 대응하면서도 지역들이 필요로 하는 사업을 위해, 지역이 상호 협력하고 기능적 연계를 통해 규모를 키우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방 대도시권을 중심으로 연계, 협력할 수 있는 구조를 먼저 만들고, 초광역권내 다수의 거점을 육성하여 다핵화된 공간구조를 구축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초광역권을 형성하는 인근 지자체 간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리고 초광역 협력에서 발생하는 산출물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등이다. 지역간 지나친 경쟁으로 초광역권이 좌초되는 상활을 막기 위해서는 초광역권에서 산출된 성과를 지역들이 상호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초광역권 성과공유체계는 지역들의 상호신뢰에 기반한 지속적인 합의절차를 통해서 도출될 수 있다.
또한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지역주도 초광역권은 수도권과의 차별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지역별로 경제, 환경, 문화, 복지 등 초광역권 발전방향이 다양하게 모색중이다. 초광역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도로 초광역권에 대한 장기적 비전을 설정하되, 다양한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보다 초광역권내 시의성, 중요성이 요구되는 사업 중심으로 단계별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지역차원에서는 수도권과 차별화되면서도 지역적 특성을 얼마나 살릴 것인가에 대해 보다 깊이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4. ‘장소의 번영’과 ‘사람의 번영’ : 통합적 접근을 위하여
도시 및 지역학계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논쟁 중 하나가 이른바 ‘장소의 번영 (Place Prosperity)’ 대 ‘사람의 번영 (People Prosperity)’ 을 둘러싼 논쟁이다. 이 논쟁은 낙후 쇠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이 개입할 때, 그 목표와 수단이 ‘장소에 기반(place-based)’ 해야 한다는 입장과,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에 기반(people-based)’ 해야 한다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거 지역정책은 장소기반의 정책이 주를 이뤘다. 정책 앞에 특정 장소의 지명이 붙고는 했다. 하지만 장소기반 정책은 실제 주민 삶과 괴리가 있었다. 최근 지역정책은 사람기반의 정책이 증가하는 추세다. 청년주거, 소상공인 지원 등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국민의 삶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영역, 특정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 정책이 강화되는 추세다. 문제는 장소기반 정책과 사람기반 정책 간에 여전히 존재하는 방향성의 불합치다. 한쪽에서는 청년을 지원한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청년들이 사는 장소에 관심이 부족하다. 장소를 지원하는 정책과 사람을 지원하는 정책이 결합해야 하는 이유다. 장소기반의 지역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주민들의 행복, 삶의 질 등 다양한 사람기반 요인을 고려한 통합적 지역정책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