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의 부담가능한 주택이 부족한 문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일일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실업자와 재택근무자 비율이 높아지면서 안정적인 주거환경에 대한 요구는 더욱 커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각 지자체별로 신규 주택공급 계획이 있지만 유럽연합의 기후변화대응 정책으로 신규 건축물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면서 신규 주택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회주택 제도와 주거보조금 등 주거안정을 위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시민들의 주거안정에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미온적인 주거정책을 비판하고 보다 급진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지난 9월 12일 암스테르담에서 열렸다. 웨스터파크부터 담 광장까지 행진하는 이 시위에 시민 약 1만 5천 여 명이 참가했으며 같은 시위가 10월 17일 인근 도시 로테르담과 11월 13일 헤이그에서도 열렸다. 시위 참가자들은 크게 4가지 변화를 요구했다. 1) 양질의 부담가능한 주택을 보장할 것, 2) 치솟는 임대료와 주택가격을 안정화 할 것, 3) 인종과 계층을 나누는 주택 및 철거 정책을 멈출 것, 그리고 4) 기생충같은 투자자들을 규제할 것
1) 이다.
1) 양질의 부담가능한 주택 부족문제
네덜란드의 주택문제의 원인은 인구증가
2), 각종 규제에 따른 신규 (사회)주택공급 차질, 사회주택의 노후화와 임대료 및 주택가격 상승 등 복합적이다. 2009년 1만 7,800여명이었던 성인
3) 노숙자가 2018년에는 3만 9,300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고
4) 사회주택 입주 대기 기간이 평균 10년 이상으로 길어지는 등 취약계층의 주택문제가 심각하다.
이에 대해 최근 네덜란드 정부는 2억 6,600만 유로를 투입하여 전국 30여 개의 부담가능한 주택 개발사업을 지원하기로 발표했다
5). 일단 2023년까지 4만 5천호의 주택이 공급될 예정으로 이 주택 중 67%는 월세가 700~1,000유로 사이인 비규제부문 주택이거나 국가 담보대출 보증한도 (2021년 기준 32만 5천유로) 이하의 저렴한 주택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그러나 현재 33만호의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어서 대규모 신규주택공급을 가속화하지 않는 이상 기대하는 효과를 빨리 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2) 임대료 및 주택가격 상승과 투자자 규제
신규 주택 공급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택을 투자처로 보는 수요가 많아서 임대료와 주택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네덜란드 주요 도시의 주택 1/3이 민간 개발자가 소유하고 있으며
6) 에어비엔비 등 단기임대사업이 인기를 끌면서 실거주 목적을 위한 주택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암스테르담, 우트렉(Utrecht), 틸버그(Tilburg), 헤이그(Hague), 로테르담(Rotterdam) 시정부는 투자자들의 주택구매를 규제하기 위해 중저가 주택에 한해 구매 후 4년 동안은 매매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을 2022년 1월부터 실시할 계획이다.
3) 인종과 계층 분리를 부추기는 주택 및 철거 정책
2006년 로테르담 시에 처음 도입되어 속칭 로테르담 법(Rotterdam Act)으로 불리는 ‘도시문제 특별대책법(Act on Extraordinary Measures for Urban Problems)’은 지역의 안전과 지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법안으로 특정 인물이 특정 지역(저소득층 밀집 지역 등)에 거주하는 것을 방지하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2017년에는 경찰 데이터를 활용하여 반사회적 인물, 범죄자, 또는 급진적 인물들이 저소득 지역에 주택을 임대하거나 매매하는 것을 방지하는 규정이 신설되어 사회적 배제, 기본권 침해 등의 논란이 있었다
7). 지역의 안전과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만들어진 법안이었지만 오히려 저소득층의 주거권을 박탈하고 계층혼합을 방해하는 등 역효과가 났으며 삶의 질 향상이나 안정성 향상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8).
시위에서는 이러한 법안의 철폐와 점유행위
9)를 범죄행위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했다.
네덜란드의 현 주거정책은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보다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많은 시민들이 공감했다. 코로나19로 1.5m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이 필수적인 상황이었지만 1만 5천명이 모일 정도로 당장의 생활과 연관된 주거문제가 빨리 해결되어야 한다는 시민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시위였다. 주택시장 내의 경제논리와 시민의 기본적인 주거권 사이의 갈등을 조율하기 위해서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주거정책을 펼치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유)학생, 저소득층 등 주택시장에서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취약계층을 배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