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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영 교수 (강남대학교)
재난은 우리가 하루하루의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삶의 이면에 차곡차곡 쌓여온 안전문제가 어느 순간 폭발할 때 발생한다. 이것은 마치 바닷가에서 모래를 공중에서 부어 모래산을 쌓을 때 산 정상이 임계점에 도달하면 갑자기 사방으로 모래 산사태가 발생해 흘러내리는 것과 같다. 모래산이 무너지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모래 산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예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재난은 우리의 상상력 너머에서 일상의 무관심을 발판삼아 폭발 임계점을 향해 오랜 동안 성장해온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커지기 어려운 한계에 도달했을 때 아무 경고 없이 그 언저리에 있던 사람들의 삶을 동강내고, 집과 일터, 지역사회에 깊은 생채기를 낸다.
지난 2001년 9월 11일 미국이 그랬다. 후일 9-11테러라고 불리게 된 국제테러가 그날 오전 8시 46분부터 10시 28분까지 미국의 경제와 정치 심장부인 뉴욕시 월드트레이드센터(WTC)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시 펜타곤, 의회를 목표로 발생했다. 이슬람성전의 명분을 내세운 테러조직 알카에다 조직원 19명이 미국공항에서 4대의 민간 항공기를 납치해 자살공격 테러를 한 것이다. 9-11테러의 뿌리는 깊다. 그 뿌리는 1998년 말 알카에다 조직원 모하메드의 최초 기획보다도, 1988년 빈 라덴의 알카에다 지도자 등극보다도, 1979년 소렴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인한 무슬림 지하드 선포보다도 앞선다. 그 시작은 1922년 서방세계에 의한 오스만제국 해체와 왕조·독재자 중심의 이슬람국가 독립이다. 그리고 석유로 인한 경제적 혜택이 국민들에게 고르게 돌아가지 않아 생기는 경제 양극화와 서방국가들의 독재·왕조정권 지원으로 인한 정치적 자유 침해, 서방문명에 대한 증오가 이를 키웠다.
사망자 2,977명, 부상자 6,291명, 재산피해 214억 달러의 테러피해는 미국을 경악시켰다. 끔찍한 반문명적 테러를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예방하지 못한 것을 보고 CIA, FBI, NSA, 군정보국 등에 비난이 쏟아졌다. 다음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정보기관들의 대대적인 개편이 이루어졌고, 국토안보부법(애국법) 제정과 국토안보부 출범이 뒤따랐다. 한편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민간인들을 구조하기 위해 월드트레이드센터에 진입해 대피를 돕다가 343명의 소방관과 75명의 경찰관이 사망한 것에 대해 미국민들의 존경과 애도가 이어졌다.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과 워싱턴까지 위협하는 테러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 의회는 2002년 11월 공화·민주 양당에서 동수로 추천한 전문위원 10명으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위원회는 1년 8개월 동안 250만 페이지 이상의 자료를 검토하였고, 10개국 1,200명과 면담했으며 19일간 개최된 청문회에서 160명의 증인으로부터 의견을 청취해 미국이 무엇을 잘못했고, 어떤 것들이 피해를 줄였는지,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미국 시민봉사단(Citizen Corps)은 그 고민의 산물이다. 9-11테러에서 무기가 된 4대의 비행기중 AA11편은 오전 8시 46분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WTC) 쌍둥이 빌딩의 북측타워 93~99층에 충돌했다. 17분 후인 9시 3분 UA175편이 남측타워 77~85층을 관통했다. 출근시간을 전후한 테러시점에 두 빌딩에는 약 16,400명에서 18,800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뉴욕시 재난대응실(OEM)의 예상보다 빠르게 테러가 발생한 후 약 1시간이 지난 9시 59분 남측타워가 붕괴(골든타임 56분)되었다. 29분 후인 10시 28분 북측타워의 붕괴(골든타임 1시간 42분)가 뒤따랐다. 대피가 가능한 골든타임이 56분에서 1시간 42분밖에 없었는데도 기적적으로 두 빌딩을 합해 WTC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사망자는 총 근무자의 약 12%인 2,152명(8명 중 1명)에 불과하였다. 총 사망자의 약 90%인 1,942명은 건물의 충돌지점보다 상층부에 근무하고 있어 탈출구가 막혀 대피가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쌍둥이 건물의 각 충돌지점 아래 사무실 근무자들 중에서는 총 사망자의 약 10%이고 총 근무자의 약 1.2%내외인 단지 210명만이 사망했다. 약 1시간 40분 정도의 골든타임이 있었던 세월호에서 탑승자 476명 중 64%인 304명이 사망·실종(사망자측면에서 9-11테러의 약 5.3배, 실제 대피가능자 측면에서 약 53배)한 것과 비교하면 9-11테러를 미처 예상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테러 후 대피를 수행했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대처에는 1993년 알카에다가 월드트레이드센터를 대상으로 시도했으나 실패한 폭탄테러의 경험이 바탕이 된 측면도 있다. 대피과정에서 많은 혼란이 있었지만 1993년 테러시도 이후 뉴욕항만관리위원회의 주도로 실시된 재난대응시스템 개선의 결과 소방관·경찰관이 수행하는 사전 대피안내 지정훈련, WTC건물 근무자를 대상으로 한 대피교육, 계단실 조명 기능 유지, 계단부착 형광표식 등의 시설개선이 2001년 테러 때 대피를 돕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물론 수많은 실수도 있었다. 경찰과 소방간 비상통신망시스템 미비, 통합현장지휘체계의 미흡, 옥상을 통한 구조계획의 부재, 비상대피로 교육부재 등은 9-11테러조사에서 밝혀진 재난 초등대응에서의 심각한 문제점이었다. 특히 북측타워 충돌 후 건물 관리자의 남측타워 사전대피 미비 및 위치고수 안내는 대표적인 대피 실패의 주요요인으로 문제제기 되었다. 미국은 「9-11테러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 철저하게 현행 시스템이 가진 문제들을 파악한 후 재난·위기관리 관련 법제도의 정비, 정부조직의 개편, 66개의 「국가안보에 대한 대통령 명령(NSPD : National Security Presidential Directive)」과 25개의 「국토안보에 대한 대통령 명령(HSPD :Homeland Security Presidential Directive)」을 근거로 한 대책·프로그램들을 통해 국가 재난·위기관리시스템을 대상으로 하나하나 근본적인 개혁에 착수하였다.
미국 시민봉사단(Citizen Corps)은 이러한 개혁정책의 대표적인 성과물이다. 미국 부시 행정부는 「진상조사위원회」의 『9-11테러 보고서』를 통해 재난·테러와 같이 국가의 관리와 대규모 개입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연방정부·지방정부·공공기관 등 공공뿐만 아니라 기업·NGO·시민 등 민간의 자발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부시대통령은 국가안보를 위한 자원봉사 기능을 향상하기 위해 2002년 1월 「미국자유수호단(USA Freedom Corps)」의 창설을 발표하였다. 미국 시민봉사단은 재난·테러·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민간부문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을 이끌어내고, 재난·테러·범죄가 발생할 경우 재난·위기·범죄 대응에 대한 미국 지역사회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미국자유수호단」의 하부조직으로 출범하였다. 시민봉사단의 목표는 재난·테러·범죄 등 주민들의 거주지에 대한 모든 유형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가족과 지역사회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도록 다양한 역량을 키우고, 대응수단을 보유하도록 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9-11테러 후 출범한 국토안보부(DHS : 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는 경찰?소방 등 재난 초등대응기관이 도착하기 전에 재난현장에 있는 시민들이 자발적이고 현명하게 재난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의 자발적인 조직 구성을 유도하고, 교육·훈련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사업을 개발하여 추진하였다. 그리고 시민봉사단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재난·위기·범죄 대응과 관련한 모든 공공·민간 기관이 참여하여 지역사회의 과제를 논의하는 시민봉사단 위원회의 구성을 지원하였다. 국토안보부의 지도에 따라 연방정부 각 부처·기관, 주정부, 지방정부, 경찰·소방·병원 등 초등대응기관, 지역사회 자원봉사단체, NGO 등 공공·민간의 다양한 기관들이 시민봉사단 위원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백악관 비서실의 ‘미국 자유수호단’ 담당부서가 시민봉사단에 대한 범부처 정부정책 방향을 이끌어가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미국 시민봉사단은 다음 세 가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첫째, 재난·테러·범죄로부터 미국민이 자신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계획을 수립하고, 비상용품을 준비하며 안전능력을 습득하고, 재난·테러·범죄 예방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 둘째, 재난대비, 대응능력, 초등의료조치, 심폐소생술, 화재진압, 대피·구조 절차에 대한 교육·훈련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 셋째, 재난 초등대응기관, 구호기관, 지역사회 안전단체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 미국 시민봉사단은 『지역사회 재난대응팀(CERT)』, 『소방봉사단(Fire Corps)』, 『이웃사회 감시단(Neighborhood Watch)』, 『의료자원 봉사단(MRC)』, 『경찰봉사단(VIPS)』의 다섯 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미국 시민봉사단의 목표는 총인구 중 약 3%의 미국민이 재난대응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11년 기준으로 미국은 1,083개의 시민봉사단을 조직했으며 미국민의 약 58%인 178백만명이 수혜를 받게 되었다. 미국 시민봉사단의 활동비용은 정부의 지원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의 자발적인 기부에 의해 확보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는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시민봉사단에 연평균 약 17.3백만달러(19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였다. 1,083개의 시민봉사단 중 절반은 총 예산의 50% 이상을 연방정부 지원금에 의존하고 있으나 나머지 절반은 예산의 상당부분을 주정부·지방정부 및 기타 민간부문으로부터 확보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미국의 시민봉사단제도를 벤치마킹하여 지난 2005년 1월 자연재해대책법[법률 제7359호]를 전부 개정하면서 법조항 제66조에 「지역자율방재단의 구성」을 신설하였다. 법조문 제①항은 ‘시장·군수·구청장은 지역의 자율적인 방재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지역주민, 봉사단체, 방재관련업체, 전문가 등으로 지역자율방재단을 구성·운영할 수 있다’고 하였고, 제②항에서는 ‘중앙본부장 및 지역본부장은 지역자율방재단의 활성화를 위하여 예산 등을 지원할 수 있으며, 시장·군수·구청장은 지역자율방재단 구성원의 재해예방·대응·복구활동 등 기여도에 따라 복구사업에 우선 참여하게 하는 등 필요한 사항을 지원할 수 있다’고 하였다. 지난 2012년 2월에는 생활 위험요소를 점검하고 신속한 초동 대처로 피해를 최소화하며 신속한 응급복구를 위해 자연재해대책법에 제66조의2(전국자율방재단연합회)를 추가하여 연합회 설립의 근거를 마련하였다. 동법 시행령에는 2012년 8월 제60조(지역자율방재단의 구성ㆍ운영) 조항을 삽입하여 지역자율방재단의 구성·운영을 규정하였다.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은 1982년 3월 『깨진 창문이론』을 공동 발표해 방치된 사회의 무질서를 경고하였다. 재난·테러·범죄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예방과 발생현장에서의 초등대응이 중요하다. 미국 시민봉사단을 벤치마킹한 우리나라 지역자율방재단이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다. 지역자율방재단이 우리나라에서 도입의 취지를 살려 지역안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우리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