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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쟁점

위험사회의 국토안전관리와 시사점

최충익 교수 (강원대학교)

I. 서론: 위험사회로의 이행

1960년대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사회는 강력한 성장 패러다임 속에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이 과정에서 안전은 희생이 강요되거나 소홀하게 다루어지는 일이 많았다. 때문에 우리사회에서 안전이라는 단어는 지루하고 형식적인 말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안전은 성장과 동행해야할 가치가 아니라 성장 속에 파묻힌 하나의 성가신 존재로 인지되었기에 안전 패러다임은 우리사회에 뿌리내리고 성장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위험한 행동마저도 안전한 것으로 둔갑되는 일이 반복되는 일도 흔하다. 어쩌면 위험천만한 행동이 안전이라는 탈을 쓰고 우리사회를 기만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화려한 경제성장 뒤에 숨겨진 위험사회의 그늘에 대한 고민과 대안마련이 진지하게 시작될 필요가 여기에 있다.

1900년대를 지배한 현상이 도시화였다면 2000년대의 국제적 화두는 단연 기후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지난 세기 동안 거역할 수 없는 현상으로 인식되며 세계 곳곳에서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도시화라는 내적 위험요소와 기후변화라는 외적 위험요소는 위험사회를 더욱 역동적인 양상으로 몰아가고 있다. 근대화 과정에서 가속화된 도시화 추세와 기후변화의 영향력이 위험사회에서 우리 국토를 더욱 위태롭게 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최충익, 2013). 게다가 근대화는 위험의 원인을 정확히 밝혀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는 과학 또는 진보의 신념을 키웠지만, 정작 현대사회는 우리가 모르는 원인들로 인하여 오히려 수많은 위험들이 양산되는 시대가 되었다(한상진, 2008). 역설적이게도 위험은 과학지식이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급격히 확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와 같은 전지구화 된 위험과 재해뿐만 아니라 각종의 자연재해와 인위재난은 도시생활의 안전을 위협하는 중요 요소가 되었다. Maslow(1943)의 욕구단계설(need hierarchy theory)에서 안전욕구(safety needs)는 생리적욕구(physiological needs) 다음에 위치하는 기초적인 욕구에 해당한다. 하지만 정작 위험사회에서 안전은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 채 상위단계의 욕구충족에 오히려 치중되어 더욱 위험을 가중시키는 형국이 되고 있다.

안전한 국토는 안전한 사회에서 시작될 수 있다. 아무리 안전한 국토공간이지만 공간을 이루는 사회적 행태가 위험하다면 위험한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국토 안전관리가 위험사회와 함께 논의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기후변화 영향이 현실화되고 있는 지금 현대 사회의 안전과 위험에 관한 인문학적 담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본 연구는 기후변화와 도시화의 흐름 속에서 기술과 공학이라는 거대포장 속에 파묻혀 소외되었던 인간과 안전의 담론을 위험사회의 관점에서 다루고자 한다. 궁극적으로 본 연구는 기후변화가 주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위험사회의 불확실성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지고 대응해 나가야 하는지, 위험사회의 사회적 취약성이 어떻게 위험의 사회적 지위를 양산하는지, 위험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국토안전관리정책의 방향은 무엇인지에 대한 창조적 담론을 모색하고자 한다.

II. 기후변화 담론의 확장과 위험사회의 도래

Beck(1992)은 일찍이 근대화 과정의 산물로서 위험사회를 거론하였으며 새로운 위험이 초국가적이며 비계급적 특징을 갖는다고 주장하였다(Beck, 1992; Beck, 1999). 이제 새로운 위험은 기후변화라는 실체가 되어 나타났으며 이는 초국가적이며 모든 계급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문제는 기후변화의 영향은 전지구적으로 공평하게 미치지만 기후변화 대응은 전혀 공평하게 이루어지지 않음에 있다. 일부 선진 국가들의 근대화 과정에서 심화된 기후변화 문제가 전 지구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자체가 공평하지 않다. 문제를 일으킨 국가와 해결해야 하는 국가가 서로 일치하지 않음에 따라 증폭되는 갈등이 내재하는 것이다. 때문에 기후변화 시대에 위험사회는 국가와 지역에 다양한 역동적 상황을 연출시킨다.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라는 Beck(1992)의 표현은 위험사회의 특징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이 같은 위험사회는 시간·공간·사회라는 다양한 차원에 의해 역동적(dynamic)으로 변화될 수 있기에 바람직한 국토의 안전관리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역동성을 사전에 인지해야한다.

기든스의 역설(Giddens's Paradox)은 불확실한 기후변화 위험이 직접 손으로 만져지지 않기에 대부분 수동적인 대응이 이루어지기 쉬움을 지적한다(Giddens, 2009). 우리사회 역시 눈부신 경제성장과 더불어 근대화과정을 거치면서도 안전과 위험에 대한 고민은 일천하였다. 최근 활발한 위험 대응논의 역시 기술적인 목표수치에 가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바람직한 인간정주 환경을 제공하는 대응책이 무엇인지, 국가와 지역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대응해 나가야하는지, 도시와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인문학적 논의는 소홀히 다루고 있다. 결국 위험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인간 자체에 대한 진솔한 담론은 기술과 공학이라는 거대포장 속에 파묻히는 비극을 맞게 된 셈이다. 위험과 재난에 대한 영향이 현실화되고 있는 지금 현대 사회의 안전과 위험에 관한 담론이 절실하다.

기후변화와 도시화 흐름 속에서 기술과 공학이라는 거대포장 속에 파묻혀 소외되었던 인간과 위험사회에 대한 담론이 다루어져야 한다. 안전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들의 관심과 전문가들의 논의가 지속될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가 주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국가와 지역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대응해 나가야 하는지, 위험사회를 극복하는 바람직한 정주 환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창조적 담론이 이루어질 때다. 위험사회에서는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담론이 배제된 공학기술의 발달이 위험을 오히려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영향이 현실화되고 있는 지금 위험사회의 국토안전과 위험에 관한 인문학적 담론이 기술적·공학적 대응과 더불어 형성되어야 하는 이유다.

많은 경우 대형 사고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으레 국민들의 관심은 사고 관련자들의 사법처리에 쏠리거나 사고처리 관한 공학·자연과학 중심의 대증적 처방에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위험과 안전’에 관한 진지한 인문학적 담론은 거의 이슈화되지 못하고 있다. 눈부신 경제성장과 더불어 근대화과정을 거치면서도 정작 안전과 위험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뒷전인 현실이다. 이제 근대화 과정에서 배태된 위험사회(risk society)의 속성이 기후변화로 인해 더욱 역동적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위험사회의 역동성을 고려한 미래 안전사회에 대한 발전적 담론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야말로 우리 국토의 안전관리를 위한 튼튼한 초석이 될 것이다.

III. 위험사회와 국토안전 패러다임의 변화

1. 위험사회의 불확실성 대응
위험사회에서 기후변화 위험은 언제 어느 곳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일단 발생한 위험은 재난으로 변화되며 재난발생은 위험사회의 정상적 기능을 현저하게 변화시키게 된다. 이는 기후변화 위험에 시간 변동성(temporal variation)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최근 위험사회의 정주패턴은 사회기반시설이 밀집된 대도시로 쏠리는 특징을 보인다. 특히 대도시는 높은 인구밀도로 인해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에 더욱 민감하게 영향을 받을 수 있기에 시간 흐름에 따르는 위험사회 기능의 변화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자연재해는 국가의 안전과 존립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위험요소이지만, 공간계획적 측면에서 파악해보면 기후변화 자연재해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단위는 바로 도시와 지역이다. 기상이변(extreme events) 및 자연재해 발생은 시간에 따라 도시기능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 같은 자연재해 발생의 메카니즘은 기후변화대응의 시간적 역동성을 부각시킨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이 같은 불확실성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위험사회에서의 국토안전시스템이 현저하게 달라질 수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구위주의 정책은 불확실성이 높은 기후변화에 대해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음을 의미하며 단기적으로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많은 국가적 자산을 위험에 빠뜨려 막대한 비용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예방위주의 정책은 단기적으로 예산부담이 따르지만 적절하게 대응이 이루어질 경우 장기적으로 국가자산을 보호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이다. 무엇보다 주의할 것은 무계획적 적응(unplanned adaptation) 역시 무조치(no adaptation)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계획된 적응(planned adaptation)정책 수립을 통한 균형 있고 신중한 접근으로 기후변화의 위해 영향들을 최소화하거나 적응할 수 있는 위험사회의 저항능력(resilience) 배양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2. 위험사회의 국토안전관리 패러다임 변화
압축적 산업화 및 근대화과정에서 축적된 위험요인들이 각종 재난 및 재해로 현재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위험사회에서 축적된 위험요소가 현실 세계에서 재난으로 다가올 것에 대해 정부와 정책결정자들은 위험과 무관한 반응을 보여 왔다. 결국 이 같은 ‘나 아닌 타자’ 현상이 위험을 방치하고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우리사회를 더욱 위험하게 한다는 점이다(Beck, 1992; Beck, 1999; Norman, 2008; Klein et al., 2007; 최충익, 2011; Joffe, 1999). 우리 주변을 둘러봐도 대형 사고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공학·자연과학 중심의 대증적 처방만이 이루어질 뿐 ‘위험과 안전’에 관한 담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눈부신 경제성장과 더불어 근대화과정을 거치면서도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그늘을 보지 못하고 정작 안전과 위험사회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

위험사회(risk society)에서 새롭게 등장한 위험은 특정 지역이나 집단에 한정되지 않으며 초국가적이며 비계급적이다(Beck, 1992; Beck, 1999). 예를 들어, 중국에서 넘어오는 황사와 미세먼지와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는 위험사회의 재난 발생이 초국경적으로 발생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울러 재난 및 재해피해 발생은 모든 계급과 계층의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발생한다. 가령, 불확실성이 큰 자연재해로 인한 위협에는 어떤 특정 계급과 계층도 예외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계급 및 계층에 따라 재난 발생 이후의 대응 및 대책의 안전 정도는 달라 질 수 있지만 재난발생 자체가 특정 지역이나 집단에 한정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 같은 재난의 비계급성과 비지역성은 국토의 안전관리 측면에서 두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 국토의 안전관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우선적 고려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재난 발생 자체는 사회적으로 지극히 평등하게 이루어지지만 대응과정은 철저하게 비대칭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는 위험지역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기에 동일 강도의 재해라도 더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위험사회에서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의 재해대응에 대한 고려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교롭게도, 실제 국토의 안전관리는 반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이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부의 안전에 관한 투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득권층이 밀집된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에 우선적으로 할당되는 경향을 보인다. 때문에, 국토의 안전관리는 국가의 개입 말고는 자체적인 안전시스템 개선을 이루기 어려운 사회적 취약계층이 있는 곳에 우선적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둘째, 어느 지역이건 불확실성을 감안한 재해관리 대응체계를 구축해야한다는 점이다. 위험사회에서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지역도 안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불확실성은 자연재해 발생의 불확실성 증가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과거 패턴에 근거해 설계된 재난방지 구조물이 이를 넘는 자연재해로 인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현상이 자주 관찰된다. 예를 들어, 100년 홍수빈도의 강도를 고려하여 설계된 예방구조물이 이상기후로 인해 200년 빈도 이상의 강도의 홍수발생으로 맥없이 무너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며 더 이상 놀라운 뉴스도 아니다. 2010년 서울 도심 한복판을 강타했던 광화문 홍수는 좋은 사례다. 100년 홍수빈도로 구조물을 세우면 그 정도의 홍수량에 대해서만 방어능력을 갖추는 것 일뿐 그 이상의 강도에 대해서는 방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재해 발생은 설계된 예방 범위 내에서만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상존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험사회에서는 과거 재해가 발생하지 않았던 지역은 미래 재해 발생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는 예측이 위험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흔히 법정 설계기준으로 구조물이 건축되면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쉽다. 행정 관료들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조차도 큰 규모로 설계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위험사회에서는 발생빈도 개념 자체가 갖는 공학적 의미에 절대적 신뢰를 부여하는 것이 더욱 위험할 수 있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위험사회를 극복하고 재해에 안전한 국토관리를 위해서는 개발과 성장이라는 목표보다 안전이라는 가치가 더 존중될 수 있는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위험사회의 국토안전관리를 위한 안전 패러다임이란 무엇일까. 안전패러다임은 인간의 존엄성에 근거한 안전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안전 패러다임의 핵심은 재해대응 시스템 향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선된 시스템을 통해 지켜야하는 인간의 존엄성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바람직한 국토안전관리는 이 같은 위험사회의 안전 패러다임으로의 변화와 동일선상에서 논의되어야 하겠다.

IV. 결론: 위험사회의 하인리히 법칙

1:29:300법칙으로 널리 알려진 하인리히 법칙(Heinlich’s law)은 위험사회의 안전국토 관리방안구축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큰 재난(serious accidents)는 우연히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인식 못한 경미한 사고(potential accidents)들의 반복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실증한 이론이다(Heinrich, 1941). 결국 큰 재난·재해(disasters)가 터지기 전 일정 기간 경고성 사건들이 존재하게 됨을 의미하며 재앙은 이 같은 사소한 것들을 방치할 때 발생한다는 논리다. 2014년 6월 세월호 참사는 이익을 위해 작은 사건·사고가 주는 일련의 경고를 무시한 채 위험을 감수함으로 얼마나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아울러 안전 불감에 익숙한 위험사회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역으로 사소한 경고 메시지에 대한 신속한 조치와 대응은 큰 사건과 사고를 미연에 예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위험사회에서 안전하게 국토를 성장시키고 관리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이 같은 맥락에서 시작된다.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사회적 가치가 재조명될 필요가 있으며 정부 부처의 안전에 대한 인식 및 의식 변화도 동반되어야 한다.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는 대형 사건·사고들이 단순한 대응미비로 인한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사회전체의 위기관리 및 재해대응 시스템의 위기로 파악되어야하는 이유다. 정부부처에서의 안전에 대한 투자는 여타 사업 예산에 밀리기 일쑤며 사건·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 가장 먼저 예산이 삭감되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안전 예산은 사업성 예산과 같이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를 동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임기 내 성과를 나타내야하는 많은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안전 및 재난관리 예산을 뒤로 하고 사업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위험사회의 불확실성 대응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아무리 위험한 국토라도 매번 큰 재난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대형 재난·재해가 언제 어디서 어떤 강도로 발생할지 모르기에 국토안전관리의 불확실성은 실로 크다. 결국 이 같은 불확실성이 미래의 재해위험에 대한 대비를 취약하게 만들 곤 한다. 향후 발생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재난과 재해에 대한 대응 준비로 엄청난 예산을 낭비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36조원(2014년 국가예산의 10%)에 달하는 엄청난 돈을 쓰고도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예산을 낭비했다며 국방부를 비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쟁의 위험이 그 만큼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년 2조원에 달하는 자연재해 피해를 겪으면서도 자연재해는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위험한 확신을 갖고 생활한다. 또한, 투자성공을 위해 위험지역에 과도한 개발행위가 이루어지도록 허용하며 국토공간을 위험천만하게 이용한다. 위험사회에서 안전한 국토공간을 구축하기 위해서 안전에 대한 투자와 의식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전투자의 결과는 사업성과가 아니라 국민들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전사회를 향한 위험사회의 국토안전관리는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안전인프라 투자는 물론이고 시민사회의 안전문화가 성숙되어야 하겠다. 우리나라는 1995년 본격적인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었지만, 4년마다 치러지는 지방선거로 인해 각급 지방자치단체는 안전관련 사업보다는 눈에 드러나는 전시적 프로젝트에 몰두하는 경향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편, 국가 정책은 5년마다 대통령 선거로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반복하며 국민안전을 위한 일관성 있는 정책은 힘을 잃고 있다.

한반도 전체를 공포에 몰아넣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는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사건보다 국가경제에 더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는 견해가 지배적일 만큼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 컸다. 사막지역 중동에서 주로 발병하며 전파되는 전염병이 현대화된 도시 서울에 착륙하여 그것도 첨단의료시설을 갖춘 병원을 무력화시키며 전파가 확산된 사실은 전염병이 더 이상 과거 후진국 시절의 전유물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제적 대도시 서울의 전염병 확산은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이슈다. 낙후된 위생시스템의 문제도 아니었고 부족한 영양상태 때문도 아니었기에 현대사회가 고도 위험 기술 사회(high-risk technology society)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이 때문에 첨단기술에 기반한 안전장치가 작동하더라도 사고는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늘 존재한다는 페로(Perrow)의 정상 사고(normal accidents)이론이 주는 시사점은 더욱 크다. 현대 도시에서 예측 불가능한 재난 및 재해 발생에 대한 안전관리담론이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미국은 안전에 대한 높은 사회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재난발생 시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예민하면서도 치밀하게 대응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한편, 다양한 재난·재해에 익숙한 일본은 대형 사건에도 놀랍도록 침착함을 보이는 안전문화를 가지고 있다. 위험사회에 적응하는 두 선진국의 안전문화가 한편으로는 불편하고 답답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저변에는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라는 핵심정서가 흐르고 있다. 사람이 물질보다 존중되고 안전이 개발에 우선할 수 있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본질로 회귀하는 사회를 이룰 때, 비로소 불안한 위험사회에서 안전사회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본 원고는 한국지적정보학회 2015년 4월호와 한국위기관리논집 11권 9호에 게재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