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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일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지난해 12월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에서 세계 195개국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하기로 하고, 그 의지를 담아 최초의 세계적 기후합의인 ‘파리협정’을 체결했다. 그동안 선진국과 개도국의 확연한 입장차이로 인하여 난항을 겪었으나, 참가국들이 적극적인 자세로 국가별 온실가스 배출 대응체계를 논의한 끝에 역사적인 ‘신기후변화체제’에 합의하였다. 신기후변화체제의 장기 목표로 산업화 이전 시기 대비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2도보다 훨씬 작게 유지하고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각국이 장기적으로 감축목표를 제출하고 이행 결과를 검증할 것을 의무화했다. 법적 구속력을 두지는 않았으나 차기 목표 제출 시 이전보다 진전된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검증은 2023년부터 5년마다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검증하는 ‘이행점검’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모든 국가는 장기 저탄소개발전략을 마련해 2020년까지 제출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하였다.
파리협정을 계기로 우리나라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 전망(BAU) 8억5060만톤CO2e 대비 37%를 감축한다는 목표를 국제사회에 제시하였고, 이에 따라 범국가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전력·수송·산업·제도 등에 대한 정책방향을 담은 ‘2030 에너지 신산업 확산전략’을 마련하였다. 그동안 ‘저탄소 녹색성장’을 이전 정부의 정책으로 간주하며 세계적 경제침체를 이유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정책에 소극적이었던 현 정부의 자세가 파리협정을 계기로 적극적으로 바뀌며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소비저감을 위한 노력을 위하여 환경부를 중심으로 부처간 협의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정책에 있어서 도시가 중심에 서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도시는 인구와 활동이 집중된 곳으로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근원이므로 일부 산업도시를 제외하고는 전력과 수송부문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감축정책의 실제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정책방향도 신재생에너지 교통수단과 ‘제로에너지 빌딩’에 초점을 맞추면서 도시를 온실가스 감축정책의 주요 대상으로 확인하였다. 도시의 건물부문과 수송부문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건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과 활동의 장소로 이동을 위하여 소비하는 에너지 소비량에 의한 것이므로 건물의 용도와 규모를 정하고 교통체계를 마련하는 도시계획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온실가스 감축정책을 실행하는 실제 주체는 도시계획의 시행자인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이다. 본래 도시계획의 목적이 지속가능한 국토관리의 기본 이념(국토기본법 제2조)에 기반하여, 국토의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한 계획의 수립 및 집행(국토의계획및이용에관한법률 제1조)에 있으므로, 기후변화 대응정책은 이미 도시계획의 목적에 포함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파리협정에 따라 장기적으로 감축목표를 제출하고, 이행 결과를 검증하는 등 신기후변화체제를 실현하기 위한 지자체의 역할을 구체화 하는 것이 새롭다고 할 수 있다.
건물부문과 수송부문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각 부문별로 산출하면 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감축목표를 세우고 이행 결과를 추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건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과 활동의 장소로 이동하는 것은 별개의 행위가 아니어서 활동주체와 활동의 집약정도(밀도)에 따라 건물에너지 소비특성과 교통수단의 이용패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밀도의 분포는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녹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토지이용과 교통 그리고 도시생태를 하나의 체계로 간주하는 도시시스템 개념의 도입하고, 이를 통해 감축목표의 이행 결과를 추정하는 방법론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도시시스템을 시장의 메커니즘을 도입한 ‘배출권 거래제’와 연계함으로써 다양한 감축정책의 시행에 따른 실질적인 이행 효과를 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지자체가 도시 및 도시활동의 변화를 예측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는 종합적인 방법론을 갖추게 되면 신기후변화체제를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도시계획의 목적을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계획이 지자체의 고유한 업무이기는 하지만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도시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는데 필요한 방법론을 스스로 강구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도시계획 학계에서 도시시스템과 관련된 연구에 집중해야 하고, 국가연구기관에서는 도시활동을 미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빅데이터를 포함한 다양한 도시정보를 수집·관리하여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해야 한다. 이와 같은 연구사업은 많은 시간과 예산이 필요하므로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속적으로 연구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하며, 우수한 전문가를 배출할 수 있는 인력양성의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도시에서 온실가스를 저감하는 일은 지금까지 사안 중심의 단편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부문간 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엄청난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고, 시민들에게는 기존 생활양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가히 혁신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에는 “우리는 기후변화를 느끼는 첫 세대이자 기후변화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이다”(버락 오바마)라는 시대적 사명감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