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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경지역의 공간계획적 잠재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허재완 (중앙대학교 교수)

일반적으로 접경지역은 매우 특별한 속성을 가진 공간이다. 그것은 접경지역에서 경계를 이루는 양 지역(혹은 국가) 간의 접촉과 교류의 빈도에 따라 접경지역의 기능이 극단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접촉이나 교류가 없을 경우 접경지역은 경제활동지역으로서의 매력을 가질 수 없어 양 경계지역에서 모두 가장 소외되고 낙후한 변방으로 전락하게 된다. 반면 양 지역 간 교류가 활발할 경우 접경지역은 새로운 경제활동의 중심지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의 남북접경지역은 지난 반세기 동안의 분단으로 인해 지역잠재력이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고 다양한 규제로 인해 오히려 낙후화가 누적되어 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는 2000년 접경지역지원법을 제정하고 접경지역종합계획을 수립함으로서 접경지역에 대한 개발과 관리를 보다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추진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러나 접경지역지원법은 국토관리의 근간을 이루는 국토기본법, 군사시설보호법 등의 하위법령인데다 지원조항도 임의규정에 불과해 실효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나마 지원이 이뤄져도 집중투자가 불가능한 연도별 분산지원 형태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접경지역지원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법·제도적으로 접경지역에 대한 특별한 우선적 지위를 인정하고 이를 토대로 우선적인 재정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구(舊)서독의 접경지역지원정책이 그 좋은 사례이다. 서독 정부는 지역개발정책에 있어서 접경지역의 우선적 지위와 권리를 적극적으로 인정하였다. 즉 접경지역지원에 대한 특혜적 지위를 인정하고 우선적인 재정지원을 펼친 것이다. 이에 따라 1953년부터 1990년까지 서독의 접경지역개발정책은 공공주택, 도로, 에너지, 교통 등과 같은 인프라의 우선적 공급에 초점을 맞추어 적극적으로 진행되었으며, 문화 및 관광분야의 지원도 동시에 병행하였다. 그 결과 접경지역의 인구 유출이 차단되고 일자리 창출과 환경 보호가 효과적으로 이루어 지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이러한 성과에 기초하여 서독정부는 1989년 동서독 접경지역이 지리적 거점기능은 물론 경제적 중심지로서의 명성을 상당 부분 회복했다고 평가했다.

우리의 접경지역개발정책은 외형적으로는 서독과 유사하지만 내용적으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접경지역에 대한 특별한 우선적 지위가 법·제도적으로 확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국가안보를 위해 지역발전의 기회를 희생해 온 접경지역 주민에 대한 보상과 정책적 배려는 미비했다. 특히 접경지역에 대한 지원계획은 지자체가 수립하지만 재원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어 사업의 실질적인 추진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서독은 접경지역 지원사업은 접경지역의 특성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지자체가 중심이 돼 계획하고 중앙정부는 필요한 재원을 부담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남북접경지역은 통일이 되면 국가발전의 성장잠재력을 극대화활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전략지역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접경지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즉 접경지역을 ‘한반도 번영의 중핵지대’로 재인식하여야 한다. 이러한 인식위에 접경지역의 공간계획적 잠재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특별하고도 우선적인 지원정책을 계획적으로 추진하여야 한다. 접경지역이 통일한반도의 새로운 성장거점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한다. 그것이 시대의 소명이다.